시리즈 안내: 배구의 여섯 가지 플레이를 하나씩 알아보는 시리즈의 3편입니다. 네이버 블로그 시절의 "배구 기록" 연재를 새로 고쳐 쓴 글이며, 랠리가 흘러가는 순서대로 서브, 리시브, 세트, 공격, 블로킹, 디그의 6편으로 이어집니다.
시작에 앞서 : 이 글은 배구를 사랑하는 일반 팬이 배구 초심자를 위해 작성한 안내문입니다. 배구 전문가가 읽으실 때 잘못된 내용이 있을 수 있습니다. 만약 그러한 부분을 발견하셨다면 제게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글에 나오는 수치는 한국배구연맹(KOVO) 홈페이지의 문자중계를 정리해 만든 비공식 통계이며, 공식 기록과 몇 개 정도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리시브 편은 "그 한 번의 터치는 왜 기록이 가장 적을까"로 끝났습니다. 이번 편은 그 한 번의 터치입니다. 세트(set)는 리시브나 디그로 올라온 공을 공격수가 때리기 좋게 올려 주는 두 번째 터치이고 그 일을 맡은 선수가 세터(setter)입니다. 국내에서는 오래전부터 토스(toss)라는 말을 함께 써 왔는데, 규칙서와 국제 용어가 세트라서 이 글에서는 세트로 적겠습니다.
세트는 결과가 자기 행에 적히지 않는 플레이입니다. 서브는 성공과 범실, 리시브는 정확과 실패, 공격과 블로킹은 성공, 디그는 성공과 실패가 그 플레이의 행에 바로 적힙니다. 세트는 다릅니다. 잘 올린 세트는 공격수의 득점으로, 어정쩡한 세트는 공격수가 블로킹에 막힌 공이나 범실로 적힙니다. 세트 행에 직접 적히는 결과는 세트 범실뿐인데 시도의 1%가 되지 않습니다. 결과가 다음 터치에 가서 적히니 세트 자체의 기록은 여섯 플레이 중 항목이 가장 적습니다. 그러면 세터가 잘하고 있는지는 무엇으로 볼 수 있을까요? 순서대로 보겠습니다.
세트의 종류 : 오버핸드, 언더핸드, 점프세트
세트의 자세는 크게 둘입니다. 이마 위에서 열 손가락으로 공을 받아 밀어 올리는 오버핸드 세트가 기본이고 공이 낮거나 급할 때 리시브처럼 두 팔을 모아 올리는 언더핸드 세트가 있습니다. 세터는 대부분 오버핸드로 올리고 언더핸드는 세터가 아닌 선수가 급하게 올릴 때 자주 나옵니다. 여기에 세터가 점프한 채로 공중에서 올리는 점프세트가 더해집니다. 공이 세터 손에 닿는 시점이 빨라져서 공격이 그만큼 빨라지고 세터가 전위에 있을 때는 올리는 척하다가 직접 넘기는 공격을 섞을 수 있어서 상대 블로커가 미리 움직이기 어렵습니다.
어느 자세로 올리든 세터는 공을 올릴 때마다 누구에게 줄지를 고릅니다. 그 선택이 세터의 일이고 그 선택을 기록에서 어떻게 찾아볼 수 있을지를 뒤에서 이야기하겠습니다. (어느 자리로 어떤 공격을 올리는지는 공격 편에서 다룹니다)
[참고] 세터가 후위에 있을 때 네트 앞으로 올라와 세트하는 것은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만(로테이션 시리즈 1편), 그 자리에서 공을 네트 상단보다 높은 곳에서 상대 코트로 넘기면 후위 선수의 공격 반칙입니다(규칙 13.2.3과 13.3.3). 그래서 후위 세터는 공을 네트보다 낮게 밀어 넣는 수밖에 없고, 네트 앞에서 때리는 이단 공격은 전위 세터만 할 수 있습니다. 2025-26시즌에 세터가 직접 때린 공격은 남자부 392개, 여자부 527개로 전체 공격의 1.5%였습니다. 문자중계는 세터의 이단 공격을 따로 구분하지 않고 오픈으로 적습니다(남자부 392개 중 385개, 여자부 527개 중 526개. 나머지는 다른 선수의 세트를 후위 세터가 때린 백어택). (2024년 11월 29일 삼성화재와 대한항공의 5세트 마지막 점수가 이 규칙으로 갈렸습니다. 후위에 있던 삼성화재 파즐리가 전위에서 공을 넘겼는데 손이 네트 상단보다 높았습니다)
세트의 두 가지 목표
서브와 리시브가 그랬듯이 세트의 목표도 둘입니다.
(1) 공격수가 때리기 좋은 공을 올리는 것. 높이와 거리와 타이밍이 그 공격수에게 맞아야 합니다. 같은 오픈이라도 김연경이 좋아하는 높이와 다른 선수가 좋아하는 높이가 다릅니다.
(2) 상대 블로커를 따돌리는 것. 어느 방향으로 올릴지 상대가 모르게 하고 블로커가 적은 쪽으로 올리는 것입니다. 세 명이 기다리는 4번 자리보다 한 명만 따라온 3번 자리가 낫습니다.
리시브의 목표 둘이 정확과 실패로 양 끝만 기록되었듯이, 세트의 목표 둘은 공식 기록에 둘 다 남지 않습니다. 남는 것은 공격의 결과뿐입니다.
KOVO 공식 기록 : 시도, 성공, 범실, 세트당 평균
한국배구연맹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는 세트 기록은 세트 시도, 성공, 범실, 그리고 세트당 평균 성공 수입니다. 리시브에 있던 정확도 없고 효율도 없습니다.
세트 성공은 세트한 공이 공격에 성공한 경우입니다. 문자중계에는 세트 행에 "정확"이라 적히는데, 이 정확이 리시브의 정확과는 뜻이 다릅니다. 리시브 정확은 공이 세터 반경 1m 안에 갔는지를 기록원이 보고 판단한 것이지만 세트의 정확은 그 다음 공격이 성공했을 때 붙는 표시입니다. 2025-26시즌 남자부의 세트 시도 26,023개 중 정확은 12,358개였고 이 12,358개는 세트 바로 뒤에 이어진 공격 성공의 수와 정확히 같습니다. 남자부 공격 성공 12,886개에서 이 12,358개를 빼면 528개가 남는데, 리시브나 디그에서 세트 없이 바로 때린 공격과 상대 오버패스를 바로 때린 공격의 성공입니다.
그래서 세트 성공은 세트의 품질이 아니라 공격 결과의 표시입니다. 세터가 아무리 예쁘게 올려 놓아도 공격수가 성공시키지 못하면 세트 성공이 아니고 어정쩡하게 올린 공을 공격수가 때려 넣으면 세트 성공입니다. 야구의 득점(run)이 이와 닮았습니다. 타자가 아무리 출루해도 뒤 타순이 불러들이지 못하면 득점이 되지 않는 것과 같아서 요즘 야구 팬들은 득점 수로 타자를 평가하지 않습니다.
세트 범실은 세트 중에 발생한 반칙입니다. 문자중계에서는 기타범실이 가장 많고 오버네트와 네트터치가 뒤를 잇습니다. 공을 잡거나 던진 캐치볼과 두 손이 따로 닿은 더블콘택트는 대개 기타범실에 섞여 있고 따로 적힌 것은 시즌에 한두 개입니다. 2025-26시즌의 세트 범실은 남자부 134개, 여자부 243개로 시도의 0.5%와 0.7%입니다. 여섯 플레이 중 범실률이 가장 낮습니다.
KOVO의 세트 개인 순위는 세트당 평균 세트 성공으로 매깁니다. 순위에 들려면 팀 세트 시도의 30% 이상을 올려야 하는데, 여섯 플레이 중 가장 높은 기준입니다. 세트는 한 명이 도맡는 플레이라 주전 세터 한 명이 팀 세트의 열에 일곱, 여덟을 올립니다.
2025-26시즌 세트 순위를 다시 세어 보면
2025-26시즌 정규리그에서 점유율 30%를 넘긴 세터를 문자중계로 다시 세어 보면 아래와 같습니다. 세트당 평균의 분모인 세트 수는 문자중계에 이름이 나온 세트를 센 것이라 공식 기록과 소수점 아래에서 다를 수 있습니다. 세트당 평균 옆에 세트 성공률(성공 ÷ 시도)을 함께 놓았습니다.
| 남자부 | 시도 | 점유율 | 세트당 | 성공률 |
|---|---|---|---|---|
| 황승빈 (현대캐피탈) | 1,829 | 51.2% | 11.83 | 55.6% |
| 황택의 (KB손해보험) | 2,871 | 74.0% | 11.71 | 53.0% |
| 한태준 (우리카드) | 2,880 | 77.1% | 11.12 | 53.3% |
| 하승우 (한국전력) | 2,826 | 77.2% | 10.93 | 51.8% |
| 이민규 (OK저축은행) | 3,066 | 77.2% | 10.60 | 50.8% |
| 한선수 (대한항공) | 2,430 | 67.3% | 10.47 | 53.4% |
| 노재욱 (삼성화재) | 1,189 | 33.2% | 7.83 | 49.4% |
| 이준협 (현대캐피탈) | 1,092 | 30.6% | 7.56 | 51.9% |
| 도산지 (삼성화재) | 1,647 | 46.0% | 7.19 | 48.9% |
| 여자부 | 시도 | 점유율 | 세트당 | 성공률 |
|---|---|---|---|---|
| 김지원 (GS칼텍스) | 2,809 | 55.6% | 11.04 | 42.8% |
| 김다인 (현대건설) | 3,721 | 67.9% | 10.96 | 39.8% |
| 이윤정 (한국도로공사) | 3,214 | 61.0% | 10.58 | 42.8% |
| 최서현 (정관장) | 3,050 | 60.3% | 9.46 | 36.9% |
| 이나연 (흥국생명) | 1,975 | 38.2% | 8.59 | 40.5% |
| 박사랑 (페퍼저축은행) | 2,190 | 44.2% | 8.55 | 39.4% |
| 박은서 (IBK기업은행) | 2,714 | 49.8% | 8.35 | 37.2% |
세트당 평균의 맹점이 표에 그대로 보입니다. 삼성화재는 노재욱과 도산지가 세트를 나누어 올렸고 두 사람의 세트당 평균은 나란히 7점대입니다. 성공률로는 다른 세터와 몇 %p 차이인데 세트당 평균으로는 3~4개 차이가 납니다. 한 세트 안에서 교체되면 그 세트는 둘 다 출전 세트로 세면서 성공은 나누어 갖기 때문입니다. 현대캐피탈도 황승빈과 이준협이 세트를 나누어 올렸는데, 이준협은 세트 성공률이 51.9%로 하승우나 이민규보다 높지만 세트당 평균은 7점대입니다. 여자부의 이나연도 성공률은 3위인데 세트당 평균은 5위입니다. 세트당 평균은 세터의 성공률에 출전 시간을 곱한 지표라서 백업 세터 없이 혼자 뛴 세터가 유리합니다.
예전 글에서 제가 세트당 평균보다 세트 성공률이 그나마 낫다고 썼던 이유입니다.
다만 세트 성공률도 그 세터가 올렸을 때의 팀 공격 성공률일 뿐입니다. 여자부 세터의 성공률이 남자부보다 10%p 이상 낮은 것은 여자부 세터가 못 올려서가 아니라 여자부 공격 성공률이 그만큼 낮기 때문입니다. 세터와 공격수를 이 숫자 하나로 가를 수는 없습니다.
세터가 올리지 않은 세트 : 이단연결
세트를 세터만 올리는 것은 아닙니다. 리시브나 디그가 세터에게 가지 못하면 가까운 선수가 대신 올리는데, 흔히 이단연결이라 부릅니다. 2025-26시즌 세트 중 세터가 아닌 선수가 올린 세트는 남자부 17.4%, 여자부 21.6%였습니다. 누가 올렸는지 등록 포지션으로 세면 남자부는 아웃사이드히터 44%, 리베로 26%, 미들블로커와 아포짓이 15%씩이고 여자부는 리베로 36%, 아웃사이드히터 32%, 미들블로커 22%, 아포짓 10%입니다. 여자부는 리베로가 가장 많이 올립니다. (리베로가 어택라인 앞에서 오버핸드로 올린 공은 공격수가 네트 상단보다 높은 곳에서 때릴 수 없어서 리베로는 어택라인 뒤로 물러나 올리거나 언더핸드로 올립니다)
이단연결 뒤의 공격은 잘 되지 않습니다. 세터가 올린 세트 뒤의 공격 성공률이 남자부 51.9%, 여자부 39.4%인데 세터가 아닌 선수가 올린 세트 뒤는 26.7%와 22.3%로 절반입니다. 공격수의 실력이 갑자기 나빠진 것이 아니라, 공의 세팅 품질이 달라진 것이겠지요. 이단연결의 4분의 3은 디그 이후에 발생하고 나머지는 리시브 편에서 본 "나쁨"(세터가 아닌 선수가 올린 리시브) 이후에 발생합니다. 어느 쪽이든 공이 세터에게 가지 못한 상황이라 올리는 사람도 급하고 공격수도 준비가 덜 된 채 때립니다.
원년부터 추이를 보면 남자부는 14%에서 17%로 조금 늘었고 여자부는 20~26% 사이를 오가며 늘 남자부보다 높았습니다. 여자부 랠리가 길어서 디그가 많고 디그 뒤에는 세터가 아닌 선수가 올리는 일이 잦기 때문입니다. 남자부가 늘어난 시기는 리시브 편에서 본 정확 비율이 감소한 시기와 겹치는데, 강해진 서브가 리시브를 세터에게서 떼어 놓은 결과로 읽힙니다.
세터가 받은 공 : 리시브 정확, 일반, 그리고 디그
리시브 편에서는 정확한 리시브가 일반 리시브보다 얼마나 나은지 값을 매기지 않았습니다. 세트 기록으로 그 차이를 볼 수 있습니다. 세터가 올린 세트를 세터가 받은 공이 무엇이었는지(리시브 정확, 리시브 일반, 디그)로 나누고 각각의 세트 성공률을 세어 보았습니다.
| 세터 세트의 직전 터치 | 남자부 성공률 | 여자부 성공률 |
|---|---|---|
| 리시브 정확 | 61.1% | 47.3% |
| 리시브 일반 | 48.7% | 37.6% |
| 디그 | 46.0% | 36.5% |
정확한 리시브 뒤의 세트는 열에 여섯이 공격 성공으로 이어지고, 세터가 움직여 받은 일반 리시브 뒤는 열에 다섯입니다. 남자부 12%p, 여자부 10%p 차이입니다. 디그 뒤는 일반 리시브 뒤보다 조금 더 낮습니다(남자부 3%p, 여자부 1%p). 남자부 세터 세트는 31%가 정확한 리시브 뒤, 41%가 일반 리시브 뒤, 28%가 디그 뒤에 나옵니다. 여자부는 23%, 34%, 43%로 디그 뒤가 가장 많은데, 여자부 세터가 얼마나 자주 어디로 튈지 모르는 공을 받아 올리는지 짐작이 됩니다.
세터별로 나누면 아래와 같습니다. 한 줄이 세터 한 명이고, 왼쪽 점부터 디그 뒤, 일반 리시브 뒤, 정확한 리시브 뒤의 세트 성공률입니다. 점 사이가 넓을수록 받은 공에 따라 크게 흔들리는 세터입니다.
황택의는 정확한 리시브 뒤의 성공률이 65.8%로 남자부에서 가장 높지만 일반 리시브 뒤에는 49.1%로 감소합니다. 황승빈은 정확 뒤가 61.8%로 평범한 대신 일반 뒤 53.8%, 디그 뒤 51.1%로 흔들린 공에서 남자부 1위입니다. 여자부의 김지원은 정확 뒤와 디그 뒤가 모두 1위이고 박사랑과 이나연은 받은 리시브 중 정확이 3분의 1(31%와 35%)밖에 되지 않는데도 성공률은 다른 세터에 뒤지지 않았습니다. 물론 이 차트에도 공격수가 섞여 있습니다. 황승빈의 뒤에는 허수봉이 있고 김지원의 뒤에는 실바가 있습니다. 다만 같은 공격수를 두고 정확한 공과 흔들린 공에서의 차이를 보는 것은 세터 쪽 이야기에 가깝습니다.
세터의 선택 : 리시브가 정확하면 속공이 두 배
리시브가 정확하면 세터의 선택은 얼마나 넓어질까요? (예전 글에서 던졌던 질문이기도 합니다) 세터가 누구에게 올렸는지는 세트 행에 적히지 않습니다. 하지만 세트 바로 다음 행에 공격 유형이 적힙니다. 세터가 올린 세트 뒤의 공격을 유형별로 세고 역시 직전 터치로 나누어 보았습니다. 속공에는 시간차와 이동공격을 합쳤습니다.
리시브가 정확하면 세트 셋 중 하나가 속공으로 갑니다. 리시브가 일반이 되면 속공이 절반 아래로 떨어지고 그 자리를 오픈이 채웁니다. 정확한 리시브 뒤에는 오픈이 남자부 0.7%, 여자부 3.7%로 거의 없습니다. 같은 4번 자리로 올린 공이라도 리시브가 정확하면 빠른 퀵오픈으로, 흔들리면 높은 오픈으로 적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디그 뒤에도 퀵오픈이 40%나 되는 것이 이상해 보일 수 있는데, 이 차트는 세터가 올린 세트만 센 것입니다. 세터가 아닌 선수가 올린 공 뒤의 공격은 남자부 76%, 여자부 87%가 오픈으로 적히고 세트 없이 바로 때린 공격은 거의 전부 오픈입니다. 그래서 디그 뒤 공격 전체로 넓히면 오픈이 남자부 45%, 여자부 55%까지 증가합니다. 세터의 손을 거친 공은 디그 뒤라도 빠르게 나간다는 뜻이기도 하고, 기록원이 세터가 올린 날개 공격을 퀵오픈으로 적는 관행이기도 합니다) 리시브 편에서 정확의 값을 매기지 않았습니다만, 정확이 세터에게 무엇을 주는지는 이 차트가 보여 줍니다. 속공과 퀵오픈을 고를 권리입니다.
세터별 속공 비중입니다. 정확 뒤에는 대부분 30% 정도인데 하승우가 44.7%, 여자부 박사랑이 46.1%로 미들블로커를 가장 많이 씁니다. 일반 리시브 뒤에도 속공을 유지하는 세터는 드물어서 남자부 한선수의 18.2%가 가장 높고 노재욱은 7.9%까지 감소합니다. 예전 글에서 썼던 대로 정확할 때와 그렇지 않을 때의 차이가 큰 세터일수록 상대 블로커는 준비하기가 쉬워집니다. 다만 이 비중은 세터 혼자 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속공을 때려 줄 미들블로커가 있어야 하고 감독이 흔들린 공에서도 속공을 허락해야 합니다. 2025-26시즌 하승우에게는 신영석이, 박사랑에게는 시마무라가 있었습니다. 하승우가 정확한 리시브 뒤에 올린 속공 430개 중 190개를 신영석이 때렸고(무사웰이 108개), 박사랑의 속공 177개 중 115개는 시마무라가 때렸습니다. 두 세터의 높은 속공 비중은 세터의 성향이기도 하고 그 미들블로커가 있어서이기도 합니다.
공식 기록 밖의 세터 기록 : 러닝세트
세트의 두 번째 목표, 상대 블로커를 따돌리는 일은 문자중계에도 없습니다. 하지만 KOVO가 경기마다 내놓는 경기 요약 자료에는 있습니다. 세터가 올린 세트 뒤의 공격 앞에 상대 블로커가 몇 명 있었는지를 0명부터 3명까지 세어 팀 단위로 적어 주는데, 2018-19시즌부터 쌓여 있습니다. 국제배구연맹은 블로커 0명이나 1명을 상대한 세트를 러닝세트(running set), 2명이나 3명을 상대한 세트를 스틸세트(still set)라 부릅니다.
블로커 수는 공격 성공률을 바로 바꿉니다. 2018-19시즌부터 여덟 시즌을 합쳐 보면 블로커 0~1명 앞에서 때린 공격의 성공률은 남자부 60.1%, 2~3명 앞에서는 50.5%입니다. 여자부는 42.4%와 39.8%로 차이가 작습니다. 남자부에서 블로커 한 명을 따돌리는 값이 여자부의 네 배쯤 됩니다.
2025-26시즌의 러닝세트 비율은 남자부 32.7%, 여자부 27.9%입니다. 남자부는 세 번에 한 번, 여자부는 네 번에 한 번 블로커 한 명 이하를 상대합니다. 남자부는 2018-19시즌 29.9%에서 30% 초반으로 증가해 머물고 있고 여자부는 2020-21시즌 20.8%까지 감소했다가 여덟 시즌 중 가장 높은 곳까지 다시 증가했습니다. 팀별로는 아래와 같습니다.
예전 글을 쓰던 2022-23시즌에는 대한항공이 45%로 다른 팀을 압도했고 그 45.4%는 여덟 시즌을 통틀어 가장 높은 값으로 남아 있습니다. 이번 시즌은 KB손해보험이 38.3%로 앞섰고 삼성화재는 24.7%로 세트 넷 중 셋이 블로커 두 명 이상을 만났습니다. 여자부는 위아래 차이가 7%p로 남자부의 14%p보다 좁습니다. 다만 러닝세트가 많다고 공격을 잘하는 것은 아닙니다. 현대캐피탈은 러닝세트 비율이 남자부 다섯 번째인데 공격 성공률은 1위였고 GS칼텍스는 여자부 여섯 번째인데 공격 성공률은 1위였습니다. 블로커를 따돌려서 버는 팀이 있고 블로커 앞에서 뚫어서 버는 팀이 있습니다.
세 가지 표기
배구 기록의 세계 표준인 데이터발리(Data Volley)에서 세트는 E 코드입니다. 서브의 S, 리시브의 R과 같은 규칙으로 E#, E+, E!, E-, E/, E=의 여섯 칸이 있고 E=가 범실입니다. 그런데 이 코드는 공격 결과가 아니라 세트 그 자체를 평가합니다. 공격수가 마음껏 때릴 수 있는 공이었는지, 블로커에게 잡힌 공이었는지를 기록원이 보고 정합니다. 공식 기록과 문자중계와 데이터발리를 나란히 놓으면 아래와 같습니다.
여섯 플레이의 대응표 중 가장 짧은 표이고 세 층이 서로 다른 것을 보는 유일한 표입니다. KOVO는 공격의 결과를 세트에 적고 데이터발리는 세트를 세트대로 적습니다. 그래서 KOVO의 세트 성공에 대응하는 데이터발리 코드는 없습니다. (세트 자체를 평가하는 것도 쉽지 않은 모양입니다. 미국 대학 배구의 분석 사이트 volleydork는 세터 평가가 일곱 기술 중 가장 불만스럽다면서 자기들이 받는 기록에는 세트 코드가 E#과 E-와 E= 셋밖에 없다고 적었습니다)
문자중계가 세트에서 더 볼 수 있는 것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누가 올렸는지이고 다른 하나는 세트 다음 행이 어느 팀인지입니다. 세트 뒤에 우리 공격이 아니라 상대 팀의 행이 이어지는 경우가 남자부 5.2%, 여자부 7.5%인데, 세트가 너무 길어 넘어간 오버세트와 공격할 수 없어서 일부러 넘긴 프리볼이 여기에 섞여 있습니다. 세트 행 자체에는 아무 표시가 없습니다.
기록이 보지 못하는 것
(1) 세트의 높이와 속도와 위치가 없습니다. 같은 세트 성공이라도 공격수 손에 딱 맞게 올라간 공과 공격수가 겨우 때려 넣은 공이 같은 성공입니다. 이 시리즈가 세터의 기록을 뒤로 미루지 않고 3편에 둔 것은 세터가 랠리의 세 번째 자리에 있기 때문이지, 세터의 기록이 갖추어져서가 아닙니다.
(2) 러닝세트는 팀 단위입니다. 한 경기에 세터가 둘 출전하면 두 세터의 세트가 섞여 적히고 어떤 공격수에게 어떤 유형으로 올려서 블로커를 따돌렸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3) 세트 뒤 상대 코트로 간 공이 실수인지 선택인지 구별할 수 없습니다. 위의 5.2%와 7.5%는 그래서 팀 단위로만 셀 수 있습니다.
(4) 세터의 선택에 값을 매기는 일은 이 시리즈의 범위 밖입니다. 리시브가 정확할 때 속공을 고른 것과 흔들렸을 때 오픈을 고른 것 중 어느 쪽이 얼마나 나은 선택이었는지는 세트 성공률로는 답이 나오지 않습니다.
다음 편 예고
세터가 방향을 골랐습니다. 그 공은 이제 공격수의 손으로 갑니다. KOVO 기록은 그 공격을 오픈, 퀵오픈, 속공, 시간차, 이동, 후위 중 하나로 적고, 결과는 성공과 차단과 범실로만 적습니다. 그런데 공격의 결말이 정말 그 셋뿐일까요. 블로커 손에 맞고 튄 공, 상대가 받아 낸 공은 어디로 갔을까요. 다음 편, 공격에서 이어집니다.
이 시리즈의 도식과 차트는 문자중계를 정리해 직접 제작한 것입니다. 문의와 지적은 언제나 환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