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안내: 배구의 기대득점 시리즈 1편입니다. 2025-26시즌의 경기 하나를 골라, 그 경기의 득점 기록에 0점으로 적힌 선수의 기여를 득점과 같은 단위로 다시 적어 봅니다. 일곱 편 내내 이 한 경기를 떠나지 않고, 마지막 8편에서만 한 시즌으로 넓힐 생각입니다.
시작에 앞서 : 이 글은 배구를 사랑하는 일반 팬이 쓴 글입니다. 배구 전문가가 읽으실 때 잘못된 내용이 있을 수 있습니다. 만약 그러한 부분을 발견하셨다면 제게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글에 나오는 수치는 한국배구연맹(KOVO) 홈페이지의 문자중계를 정리해 만든 비공식 통계이며, 공식 기록과 몇 개 정도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배구 기록의 이해 여섯 편에서 서브부터 디그까지 여섯 플레이가 기록에 어떻게 세어지고 무엇이 빠지는지 보았습니다. 편마다 "값을 매기는 일은 이 시리즈의 범위 밖"이라고 적어 두고 넘어온 질문이 있었는데, 이 시리즈에서 그 가치를 측정합니다. 리시브 정확 하나와 디그 하나가 팀의 득점에 얼마나 보탬이 되는지를 실제 경기 기록을 통해 측정해 보겠습니다. 지난 시리즈 끝에 적어 둔 대로, 득점 기록에 0점으로 적힌 선수가 그 경기에서 무엇을 했는지부터 시작합니다.
2025년 12월 14일, 총득점 105:105 동률의 5세트 접전
2025년 12월 14일 3라운드, 한국도로공사와 IBK기업은행의 경기를 골랐습니다. 순위표로는 전력 차가 뚜렷한 경기였습니다(도로공사는 12승 2패로 1위, IBK는 5승 8패로 6위였으니까요). 1,2세트는 IBK가 18:25, 22:25로 가져갔습니다만, 도로공사가 남은 세 세트를 25:21, 25:23, 15:11로 뒤집어 3:2로 이겼습니다.
다섯 세트의 점수를 다 더하면 105:105입니다. 두 팀이 똑같이 105점을 냈는데 한쪽이 이겼다는 뜻이고, 경기가 얼마나 팽팽했는지는 이 숫자 하나로 충분할 것 같습니다(점수 합계가 같은 경기는 이번 시즌 여자부 126경기 중 두 번뿐이었습니다).
이 경기의 득점 기록입니다. 득점 옆에 실점(범실과 차단당함으로 상대에게 내준 점수)과 둘을 합친 득실을 함께 적었고, 괄호는 서브·공격·블로킹의 내역입니다. 득실 순으로 늘어놓았습니다.
| 선수 | 팀 | 득점 (서/공/블) | 실점 (서/공/차단/블) | 득실 (서/공/블) |
|---|---|---|---|---|
| 모마 (OP) | 도로공사 | 35 (0/33/2) | -10 (5/3/2/0) | +25 (-5/28/2) |
| 빅토리아 (OP) | IBK | 33 (2/30/1) | -14 (0/6/7/1) | +19 (2/17/0) |
| 육서영 (OH) | IBK | 20 (0/19/1) | -7 (1/3/3/0) | +13 (-1/13/1) |
| 타나차 (OH) | 도로공사 | 18 (2/14/2) | -7 (2/2/2/1) | +11 (0/10/1) |
| 김세빈 (MB) | 도로공사 | 11 (0/7/4) | -3 (1/0/1/1) | +8 (-1/6/3) |
| 킨켈라 (OH) | IBK | 7 (1/6/0) | -1 (0/0/1/0) | +6 (1/5/0) |
| 이주아 (MB) | IBK | 8 (0/4/4) | -4 (2/2/0/0) | +4 (-2/2/4) |
| 강소휘 (OH) | 도로공사 | 8 (0/7/1) | -5 (1/3/1/0) | +3 (-1/3/1) |
| 박은서 (S) | IBK | 2 (0/1/1) | -2 (2/0/0/0) | 0 (-2/1/1) |
| 김다은 (S) | 도로공사 | 4 (1/2/1) | -5 (3/1/1/0) | -1 (-2/0/1) |
| 문정원 (L) | 도로공사 | 0 | 0 | 0 (0/0/0) |
| 임명옥 (L) | IBK | 0 | 0 | 0 (0/0/0) |
모마가 35점, 빅토리아가 33점. 두 아포짓이 랠리를 마무리짓는 득점을 68번 성공시켰습니다(두 팀이 낸 210점의 3분의 1입니다). 그리고 표의 맨 아래에 득점 0점의 두 선수가 있습니다. 도로공사의 문정원과 IBK의 임명옥, 두 팀의 리베로입니다. 리베로는 규칙상 서브도 공격도 블로킹도 할 수 없으니 득점이 0점인 것은 당연합니다(득점으로 기록되는 세 가지 플레이가 하필 전부 리베로에게 금지된 플레이입니다).
리시브 라인을 함께 지키던 두 선수
이 두 이름을 나란히 놓은 이유가 있습니다. 임명옥은 10년 동안 도로공사의 리베로였고 리베로 부문 베스트7을 여섯 해 연속 받은 선수입니다. 문정원은 같은 팀의 왼손잡이 아포짓이면서 리시브까지 맡는 몇 안 되는 선수였고, 두 선수는 오랫동안 도로공사의 리시브 라인을 코트 반씩 나눠 지켰습니다(배구를 좀 보신 분이라면, 임명옥과 문정원 두 선수가 리시브라인을 책임졌던 것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2025년 봄 임명옥이 IBK로 팀을 옮겼고 남은 문정원이 그 자리를 이어받아 리베로로 전향했습니다. 한때 서브 부문 1위를 세 차례나 차지했던 선수가 서브를 넣을 수 없는 자리로 옮겨 간 것입니다.
그래서 이날 경기는 한 팀에서 리시브를 받던 두 선수가 코트 양쪽에서 각자의 팀 리시브를 책임진 경기였습니다. 문정원은 리시브 25개와 디그 28개, 임명옥은 리시브 29개와 디그 31개를 시도했습니다(디그는 실패까지 센 시도 수입니다). 세터 대신 올린 세트까지 더하면 두 선수가 공을 터치한 횟수는 141번인데, 득점 기록에서 두 선수가 차지하는 위치는 맨 아래 0점 라인입니다.
하지만 이 경기를 지켜본 사람 중에 두 리베로가 승부에 아무 기여도 하지 않았다고 말할 사람은 없을 겁니다. 그렇다면 그 기여는 몇 점일까요. 저는 이 질문에 숫자로 답해 보고 싶었고, 그 답이 바로 아래 표입니다.
같은 경기의 다른 표
같은 경기를 다른 기준으로 적은 표입니다. 이 기준의 이름은 기대득점(EP, Expected Point)이고, 어떻게 계산했는지는 2편부터 이어서 설명드리겠습니다. 지금은 "선수의 모든 플레이가 팀의 득점 가능성을 얼마나 증감시켰는가를 점수 단위로 적은 것"이라고만 읽어 두시면 됩니다. 득점 기록을 득점과 실점으로 나눴듯이 이 표도 선수가 플레이로 획득한 EP의 합(EP+)과 잃은 EP의 합(EP-)으로 나눠 적었고, 괄호 안은 득점 기록과 같은 서브·공격·블로킹의 몫입니다(괄호 밖 EP와 괄호 안 합계의 차이가 리시브·세트·디그에서 온 EP입니다). 행의 순서는 위 표와 같은 득실 순이고, 아래 도식의 오른쪽 표는 이 EP 득실 순으로 다시 늘어놓은 것입니다(번호는 이 경기에 이름을 올린 22명 가운데의 순위입니다).
| 선수 | EP+ (서/공/블) | EP- (서/공/블) | EP 득실 (서/공/블) |
|---|---|---|---|
| 모마 (OP) | +17.26 (0.9/13.5/1.8) | -12.38 (-2.6/-7.6/-2.2) | +4.88 (-1.7/5.9/-0.4) |
| 빅토리아 (OP) | +16.95 (2.9/12.1/1.5) | -18.32 (-2.0/-14.4/-1.3) | -1.37 (0.8/-2.3/0.2) |
| 육서영 (OH) | +11.26 (0.1/8.4/0.8) | -10.92 (-1.1/-5.9/-1.5) | +0.33 (-0.9/2.5/-0.7) |
| 타나차 (OH) | +11.37 (2.2/5.6/1.6) | -9.65 (-1.5/-5.8/-1.4) | +1.72 (0.8/-0.2/0.2) |
| 김세빈 (MB) | +8.31 (0.4/2.3/5.1) | -5.59 (-0.6/-1.3/-3.6) | +2.73 (-0.2/1.0/1.5) |
| 킨켈라 (OH) | +6.43 (1.1/2.5/0.9) | -2.99 (-1.2/-1.4/0.0) | +3.43 (0.0/1.1/0.9) |
| 이주아 (MB) | +6.30 (0.6/1.6/3.9) | -7.92 (-1.6/-3.0/-2.7) | -1.62 (-1.0/-1.4/1.2) |
| 강소휘 (OH) | +6.80 (0.0/2.8/1.5) | -8.38 (-0.9/-5.1/-0.3) | -1.58 (-0.9/-2.4/1.2) |
| 박은서 (S) | +6.52 (1.0/0.3/2.0) | -4.55 (-1.2/0.0/-1.8) | +1.96 (-0.1/0.3/0.2) |
| 김다은 (S) | +6.30 (2.2/0.8/1.3) | -8.53 (-2.4/-1.2/-1.6) | -2.23 (-0.2/-0.4/-0.2) |
| 문정원 (L) | +4.20 (0/0/0) | -0.11 (0/0/0) | +4.09 (0/0/0) |
| 임명옥 (L) | +4.16 (0/0/0) | -0.65 (0/0/0) | +3.51 (0/0/0) |
득점 35점의 모마가 1위인 것은 득점 기록과 같습니다. 이 기준으로도 공격수의 순위는 내려가지 않습니다. 그런데 2위가 득점 0점의 문정원이고, 3위가 역시 0점의 임명옥입니다. 반대로 33점을 올린 빅토리아는 마이너스입니다. 득실로는 +19로 2위인데 EP표에서는 EP- 열(-18.32)이 가장 큽니다. 두 표의 순위가 다릅니다. 득점 기록에서 2점 차이였던 모마와 빅토리아가 이 표에서는 6점 넘게 벌어져 있습니다(+4.88과 -1.37이니 6.3점 차이입니다).
이 표를 처음 보면 두 가지 의문이 생기실 겁니다. 득점 0점인 선수가 어떻게 +4점을 얻는가, 그리고 33점을 올린 선수가 어떻게 마이너스가 되는가. 둘 다 이 연재글이 답해야 할 질문이고, 그 답은 전부 이 경기의 실제 랠리 안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배구 기록의 두 가지 단위
의문을 풀기 전에, 득점 기록에서 두 리베로가 왜 0점일 수밖에 없는지부터 짚어 두겠습니다.
배구의 공식 기록은 두 가지 단위로 나눌 수 있습니다. 한쪽에는 득점으로 적히는 기록이 있습니다. 서브 득점, 공격 득점, 블로킹 득점. 랠리를 그 자리에서 끝내는 세 가지 플레이이고 이 셋의 합계가 선수 이름 옆에 "득점"으로 찍힙니다. 모마의 35점은 공격 득점 33개와 블로킹 득점 2개의 합입니다(서브 에이스는 없었습니다).
다른 쪽에는 개수로만 적히는 기록이 있습니다. 리시브, 디그, 세트. 랠리를 끝내지 않고 공을 살리고, 이어주고, 때릴 수 있게 만들어 줄 뿐이라 몇 번 했고 그 결과가 몇 개인지만 기록됩니다(리시브에는 효율이라는 지표가 하나 더 붙습니다만, 효율 역시 점수 단위는 아닙니다). 문정원의 리시브 25개와 디그 28개가 여기에 적힙니다.
이 구분은 플레이의 가치를 나눈 것이 아니라 플레이의 위치를 나눈 것입니다. 랠리의 마지막 플레이였느냐, 그 앞의 플레이였느냐. 모마가 내려친 공은 문정원이 받아 올리고 김다은이 세트해 준 공입니다. 그런데 이 두 단위는 서로 환산되지 않습니다. 공격 득점 35점은 35점인데, 리시브 25개는 몇 점입니까? 개수와 점수가 한 테이블 위에 놓여 있는데 둘을 바꿔 볼 방법이 없으니, 득점 기록에서 리베로는 0점일 수밖에 없습니다.
야구가 먼저 답한 질문
잠시 야구 이야기를 해 보겠습니다. 야구의 세이버메트릭스는 오래전부터 이 문제를 풀어 왔습니다. 2006년 톰 탱고(Tom Tango)가 『The Book』에서 정리한 기대득점(Run Expectancy) 모델이 그 답 중 가장 단순한 것인데, 방법은 과거 기록을 전부 세어 보는 것입니다.
메이저리그 팀이 이닝을 시작할 때 평균적으로 얻는 점수는 0.555점이었습니다(1999~2002년 실측). 무사에 주자가 1루에 나가면 그 기대득점이 0.953점으로 증가합니다. 그렇다면 타자가 아웃되지 않고 1루에 나간 행위의 가치는 0.953 - 0.555 = +0.398점입니다. 팀의 기대득점을 그만큼 증감시켰다는 사실만 적힙니다(안타였는지 볼넷이었는지 상대 실책이었는지는 상관없습니다). 이렇게 측정하면 홈런도 볼넷도 아웃까지도 전부 "기대득점을 얼마나 증감시켰는가"라는 한 가지 단위로 환산됩니다.
배구는 이 모델을 가져오기에 야구보다 좋은 조건을 하나 갖고 있습니다. 야구의 이닝은 0점으로도 3점으로도 끝나지만 배구의 랠리는 어느 한 팀의 정확히 1점으로 끝나고 예외가 없습니다. 걸린 점수가 늘 1점뿐이니 어떤 순간의 기대득점은 곧 "그 랠리를 이길 확률"과 같은 숫자입니다. 기대득점 0.6점은 곧 득점확률 60%, 그 장면에서 열 번을 붙으면 여섯 번은 그 랠리를 이긴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배구판 기대득점 모델은 이렇게 만들어 보았습니다. 랠리의 어느 장면에서든 "여기서 우리 팀이 이 랠리를 이길 확률"을 과거 기록 전수조사로 측정하고, 선수의 플레이 하나하나가 그 확률을 얼마나 증감시켰는지를 세는 것입니다. 랠리가 끝나면 그 1점은 랠리에 관여한 플레이들에게 각자 확률을 증감시킨 만큼 나뉘어 돌아갑니다. 위 표의 +4.09는 문정원의 플레이 63번이 그렇게 나눠 받은 몫의 합계입니다.
1점을 나누어 적는 장부
1점을 플레이들에게 나누어 적는 일은 회사의 관리회계와 같은 작업입니다. 회사의 매출은 영업사원의 이름으로 찍히지만 회계에서는 그 매출을 만든 생산과 개발과 물류에 원가와 공헌을 나누어 적습니다. 우리가 만들려는 것도 팀이 얻은 1점을, 그 1점을 만든 모든 플레이의 계정에 나누어 적는 장부입니다. 위의 두 번째 표는 이 경기 210개 랠리를 그 장부에 적고 선수별로 합산한 것입니다.
사실 제가 이 질문을 던진 것이 처음은 아닙니다. 3년 전 겨울에 옛 블로그에서 배구판 기대득점 모델을 처음 만들어 본 적이 있고, 그 뒤로 여러 시즌의 기록을 다시 세고 모델을 몇 번이고 부수고 다시 지었습니다. 이 시리즈는 그 작업의 완성판인데, 이번에는 시즌 전체 대신 경기 하나만 들고 가 보려 합니다(시즌 합계로 이야기하면 숫자가 너무 커서 그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가 보이지 않더군요).
앞으로 일곱 편
2편에서는 이 경기의 짧은 랠리 하나를 멈춰 세워, 랠리의 각 장면의 확률을 어떻게 측정하는지를 봅니다. 3편에서는 문정원이 이날 받은 리시브 25개의 가치를 측정합니다. 정확한 리시브와 흔들린 리시브의 가치가 다른 것은 당연한데, 같은 "정확"끼리도 빅토리아의 서브를 받았을 때와 육서영의 서브를 받았을 때 가치가 두 배 넘게 다릅니다. 4편이 가장 중요한 편입니다. 3세트의 랠리 하나를 회계 장부처럼 한 줄씩 펼쳐, 득점을 플레이들에게 나누는 규칙을 세웁니다. 5편에서는 이 회계가 크게 틀렸던 자리를 봅니다. 이날 임명옥은 디그를 여섯 번 실패했는데, 옛 장부였다면 그 여섯 번이 임명옥의 계정을 어떻게 만들었을지를 봅니다. 그리고 6편에서 두 번째 표를 계정별로 전부 펼칩니다. 7편은 스물두 명의 원장을 팀별로 합쳐 두 팀의 장부를 만들고, 그 합을 선수별·플레이별·국면별로 나눕니다. 8편은 이 경기 하나를 한 시즌으로 넓혀 장부를 승수로 바꾸고, 피타고라스 기대승률과 만나는 자리에서 시리즈를 맺습니다.
다음 편으로 넘어가기 전에 질문 하나만 적어 두겠습니다. 득점을 기여한 만큼 쪼개어 나눠 주려면 먼저 그 기여를 측정할 기준이 있어야 합니다. 야구는 이닝의 기대득점을 과거 기록 전수조사로 쟀습니다. 그렇다면 배구에서, 이를테면 5세트 7:6에서 문정원이 리시브를 올린 그 장면이 갖는 "평균적인 가치"는 어디서, 어떻게 측정하는 걸까요?
(2편에서 계속)
이 시리즈의 도식은 직접 제작한 것입니다. 문의와 지적은 언제나 환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