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안내: 배구의 기대득점 시리즈 2편입니다. 1편에서 12월 14일 도로공사와 IBK의 경기를 두 가지 표로 보여 드리고, "득점을 기여한 만큼 나누려면 먼저 기여를 측정할 기준이 있어야 한다"는 질문을 적어 두었습니다. 이번 편에서는 그 경기의 짧은 랠리 하나를 멈춰 세워 그 기준을 만듭니다.
시작에 앞서 : 글에 나오는 수치는 KOVO 문자중계 기록을 직접 집계한 비공식 통계라 일부 오류가 있을 수 있고, 공식 기록과도 다를 수 있습니다.
5세트 7:6, 랠리 하나를 멈춰 세우면
5세트 7:6, 도로공사가 한 점 앞선 장면입니다. IBK 박은서가 서브를 넣었고, 문정원이 정확하게 받아 올렸고, 김다은이 세트를 올렸고, 모마의 백어택이 그대로 득점이 됐습니다. 도로공사의 득점, 8:6. 플레이 넷으로 끝난 짧은 랠리입니다(이 경기 210개 랠리 가운데 첫 공격이 그대로 득점이 된 랠리가 61개입니다).
박은서 서브 → 문정원 리시브(정확) → 김다은 세트 → 모마 백어택 성공
경기 기록(문자중계)이 바로 이 플레이를 한 줄씩 받아 적은 것입니다. 이제 이 넷 사이 아무 데서나 화면을 멈춰 보겠습니다. 어느 장면에나 "여기서 도로공사가 이 랠리를 이길 확률"이 존재합니다. 문정원의 리시브가 세터 머리 위에 정확히 올라간 장면과, 같은 서브에 밀려 공이 코트 밖으로 튕겨 나가기 직전인 장면은 누가 봐도 다른 장면입니다. 그 "다름"을 확률 하나로 적은 것이 기대득점(EP, Expected Point)입니다.
이 랠리에 실제 확률을 달면 이렇게 됩니다(2025-26시즌 여자부 실측, 도로공사 기준).
| 장면 | 도로공사가 이 랠리를 이길 확률 |
|---|---|
| 박은서의 서브 직전 | 0.609 |
| 문정원의 리시브가 정확하게 올라간 순간 | 0.674 |
| 김다은의 세트가 올라간 순간 | 0.676 |
| 모마의 백어택이 득점이 된 순간 | 1.000 |
1편에서 말씀드린 배구 경기의 특징이 여기서 반영됩니다. 랠리에 걸린 점수는 정확히 1점이므로 랠리를 이길 확률이 67.4%라면 기대득점은 0.674점입니다. 확률이 그대로 점수입니다.
그리고 이 모델에서 두고두고 쓰게 되는 성질 하나가 따라 나옵니다. 두 팀의 기대득점을 더하면 항상 1입니다. 도로공사가 0.674면 IBK는 0.326이니 한쪽만 계산하면 반대쪽은 저절로 나옵니다. 뒤집어 말하면 양쪽을 따로 계산했는데 합이 1에서 어긋날 때는 계산 어딘가가 틀린 것입니다.
확률을 계산한 방법은?
그렇다면 0.674라는 확률은 어떻게 계산했을까요? 야구의 『The Book』이 이닝 상황별 기대득점을 계산한 방법 그대로, 과거 기록을 모두 측정했습니다.
2025-26시즌 여자부에서 "리시브가 정확했던 장면"을 전부 모아 그 랠리를 실제로 몇 %나 이겼는지 세면, 그 비율이 곧 0.674입니다. 문정원의 리시브 하나에서 측정한 확률이 아니라, 이 시즌 여자부에서 정확한 리시브 뒤에 벌어진 모든 랠리의 결과가 그 안에 들어 있습니다. 다른 모든 장면도 같은 방법으로 측정합니다. 장면의 종류가 많아 셈이 번거로울 뿐, 방법은 랠리를 성질별로 모아 평균을 내는 것 하나뿐입니다.
각 시즌별 기대득점은 해당 시즌에만 반영합니다. 표본을 늘리려고 여러 시즌을 합쳐 볼까 싶었는데, 제가 측정해 보니 시즌 사이의 차이는 표본이 흔들린 결과가 아니라 리그 스타일의 실제 변화였습니다(같은 남자부 서브 순간의 확률이 2021-22시즌에는 0.317, 2025-26시즌에는 0.308입니다. 둘 중 하나가 틀린 것이 아니라 리그가 그 사이에 변한 것입니다). 그래서 이 장부의 확률은 시즌마다 따로, 그 시즌의 기록만으로 다시 측정합니다. 12월 14일 경기의 확률은 전부 2025-26시즌 여자부에서 측정한 것입니다.
서로 다른 세 확률로 본 랠리
위 랠리는 네 플레이로 끝났지만 더 길어질 수도 있었습니다. 모마의 공격이 디그되면 IBK의 반격이 오고 그 반격이 또 디그되면 다시 도로공사의 차례입니다. 리시브의 품질이나 공격의 종류 같은 세부를 빼고 랠리를 큰 장면 셋으로만 나누면, 모든 랠리는 예외 없이 다음 순서로 진행됩니다.
서브 → 리시브팀의 첫 공격(FBSO) → 끝나지 않으면 상대의 반격(Transition) → 또 끝나지 않으면 다시 반격 → … → 공이 바닥에 떨어지면 끝
첫 공격(FBSO)과 반격(트랜지션)이라는 이름은 국면으로 읽는 배구 랠리에서 쓴 그대로입니다.
각 장면에 2025-26시즌 여자부의 실측 확률을 달면 이렇게 됩니다.
| 순간 | 그 순간 그 팀이 랠리를 이길 확률 |
|---|---|
| 서브를 넣는 순간(서브팀) | 0.391 |
| 같은 순간의 리시브팀 | 0.609 |
| 첫 공격(FBSO)을 때리는 순간(리시브팀) | 0.635 |
| 반격(Transition)을 때리는 순간(반격팀) | 0.607 |
이 표에서 알 수 있는 3가지
표에 적은 확률은 3개뿐이지만 여기서 벌써 배구라는 경기의 특징이 보입니다.
첫째, 배구는 서브를 넣는 팀이 불리한 경기입니다. 여자부의 서브팀은 랠리 열 번 중 네 번도 못 이깁니다(0.391). 위 랠리에서 서브를 넣은 IBK가 0.391로 출발하고 받는 도로공사가 0.609로 출발한 이유입니다. 서브는 공격의 시작이라기보다 상대에게 공을 넘겨주는 행위에 가깝고, 그래서 배구는 "서브권을 지키는 경기"가 아니라 "상대 서브를 받아 끊어내는(사이드아웃) 경기"입니다. 이날 두 팀이 똑같이 105번씩 서브를 넣고 똑같이 105점씩 냈다는 사실(1편의 105:105입니다)을 여기에 겹쳐 보시면, 두 팀 모두 상대 서브를 받아 끊어낸 횟수가 정확히 같았다는 뜻이 됩니다.
둘째, 첫 공격(FBSO)이 반격(Transition)보다 쉽습니다. 안정된 리시브에서 출발하는 첫 공격은 0.635, 어수선한 수비에서 출발하는 반격은 0.607입니다. 실제 공격성공률로도 41.6% 대 36.6%로 갈립니다. 첫 공격이 막혀 랠리가 길어지면 승부는 첫 공격 때보다 5할에 가까워지는 셈입니다.
셋째, 공이 넘어갈 때마다 유리함이 시소처럼 뒤집힙니다. 어느 국면이든 "공을 쥐고 공격을 준비하는 쪽"이 5할을 넘습니다(이 표에서는 0.61에서 0.64 사이입니다). 두 팀의 합이 늘 1이니 이 시소의 받침점은 정확히 0.500입니다. 랠리는 이 시소가 몇 번 오가다 어느 한쪽에서 멈추는 과정이고 기대득점은 그때그때 시소가 어느 쪽으로 얼마나 기울었는지를 적은 확률입니다. 선수의 플레이란 이 시소를 자기 쪽으로 기울이는 일이고 기울인 각도가 곧 그 플레이의 가치가 될 것입니다. 문정원의 리시브가 0.609를 0.674로 올린 것이 그 각도입니다.
남자부는 어떨까요? 남자부는 서브팀이 더 불리합니다(같은 시즌 0.308). 이유 하나는 랠리 길이입니다. 여자부는 첫 공격 한 방으로 끝나는 비율이 낮아 랠리가 길어지고, 길어진 랠리만큼 서브팀에게도 기회가 돌아옵니다. 다른 하나는 서브 범실률인데, 이 이야기는 다음 편에서 하겠습니다.
장부 안에서 세 확률의 자리
서로 다른 이 세 확률은 앞으로 장부의 기준선이 됩니다. 서브의 0.391은 이 경기 210개 랠리의 계산이 전부 출발하는 확률이고, 0.635와 0.607은 앞으로 잘게 쪼갤 세부 장면들을 발생 빈도로 가중평균하면 정확히 되돌아오는 확률이며, 세부 칸의 표본이 부족할 때 대신 쓰는 확률이기도 합니다. 앞으로 할 일은 이 확률을 바꾸지 않고 그 안을 더 잘게 쪼개는 것입니다.
그럼 쪼개 보겠습니다. 위 표에서 리시브라는 장면은 0.609라는 확률 하나로 뭉쳐져 있습니다. 그런데 이날 문정원이 받은 리시브 25개는 정확 21개, 일반 3개, 나쁨 1개였습니다. (정확과 실패는 문자중계에 적혀 있고 일반·나쁨·오버패스는 다음 행을 보고 나눈 것입니다. 배구 기록의 이해 2편의 다섯 등급 그대로이고, 나쁨은 리시브가 세터에게 가지 않은 경우입니다.) 세터 머리 위에 정확히 올라간 리시브와 흔들린 리시브가 같은 0.609일 리는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한 번 더 들어가면, 같은 "정확" 21개끼리도 가치가 미묘하게 다릅니다. 3세트에 육서영의 서브를 정확하게 받았을 때는 +0.061이고 1세트에 빅토리아의 서브를 똑같이 정확하게 받았을 때는 +0.129입니다. 다음 편에서는 품질이 가치를 어떻게 가르는지, 그리고 같은 품질 안에서 무엇이 또 가치를 가르는지를 알아보겠습니다.
(3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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